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연평도 포격전 (문단 편집) === 포격과 반격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bPSiaC9P2SY)]}}} || ||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의 포격이 시작됐다.'''[br]포격 직전 연평도로 입항했던 여객선에서 찍힌 동영상. 북한군 포격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OGTsxh7WAE)]}}} || || '''비슷한 시각 촬영되어 제보된 동영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TpG82ISK7Eo)]}}} || || '''한 학생이 연평도를 탈출하면서 휴대폰으로 제보한 동영상'''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DNKF00087983.jpg|width=100%]]}}} || || 2010년 11월 25일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가 공개한 최초 피격 순간을 담은 사진 || 유명한 이 최초 피격 순간 사진을 찍은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연평부대]] 정훈장교 이성홍 대위의 증언에 따르면 저 상황은 다음과 같다.[[https://news.naver.com/main/read.naver?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334270|#]] 이 대위는 부대원들의 포 사격훈련 모습을 촬영하고 있었는데 사격훈련이 모두 끝난 뒤 잠시 후 앞쪽에서 잇따라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솟자 반사적으로 셔터를 눌러서 그 순간이 고스란히 사진에 담겼다. 그 뒤 그게 적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고 "빨리 피해"라는 고함소리를 듣고는 정신없이 대피호 안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즉 마침 훈련 홍보촬영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최초의 적 포탄이 떨어진 직후의 순간을 그대로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폭발이 '''[[북한군|적]]의 포격'''임을 파악하자 포병들은 [[자주포]]들을 일단 포상 내부로 숨기고(소산) 나머지 [[해병]]들도 대피호로 대피하였으며 14시 41분경 적의 포 공격이 멈추어 잠잠해지자 [[K-9 자주곡사포]] 3문을 포상 밖으로 다시 끌어내어 14시 47분경부터 대응사격을 시작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38&aid=0002108582|#1]],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html?no=66575|#2]] [[K-9 자주곡사포]]의 뒤에 보이는 화염에 대해 일각에서 [[열압력탄]]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사진의 화염은 대구경 열압력포탄에 의한 화염으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작으며 열압력탄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위로 피어오르는 형태의 화염을 내지 않는다. 포상에 있던 타이어가 타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는데 실제로 2011년 진지보수 공사 때 타이어를 제거한다는 소리가 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후 타이어가 불에 탔든 아니든 실제로 타이어가 타는 우려가 있어 최전방 부대를 중심으로 타이어를 모두 제거하고 불에 타지 않는 것으로 전량 교체되었다. 해당 사진에 대해 국방부는 [[장약#s-2]]에 불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대한민국]]은 당일 오전에 미리 예정된 [[호국 훈련]] 계획에 따라 정상적으로 훈련을 실시했다. [[대한민국 해병대]] [[연평부대]]도 호국훈련의 일환으로 '''남쪽''' 바다를 향하여 사격훈련을 했으나 [[북한]]은 이를 남한 측 도발로 규정하고 오후 14시 34분 [[대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탄을 발사했고 남한 역시 14시 47분부터 이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2&aid=0002207345|대응하였다]]. [[조선인민군|북한군]]의 초반 포격에 [[대한민국 국군|한국군]]은 2대의 [[K-9 자주곡사포]]가 손상되었고 한국군은 남은 3대[* 원래는 포병의 1개 포대당 화포 보유량이 6대이므로 4대가 남아야 하지만 1대는 이미 훈련 때 불발탄 문제로 고장난 상태였다.]의 K-9 자주곡사포로 북한 [[황해남도]] [[강령군]] 무도의 북한군 기지를 향해 50발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7&aid=0000011235|보복 사격을 가했다]].[* [[대포병 레이더]]가 당시 가동이 중단되었으므로 우선순위로 정해진 사격목표인 무도에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30발쯤 사격할 때 1대를 긴급수리해 4대를 투입. 이후 [[북한]]이 다시 [[레이더]] 기지를 노리고 개머리 반도에서 포격을 개시하자 [[한국군]]은 다시 30여 발의 포를 개머리 반도에 발사했다. 교전이 중지될 때까지 북한군은 총 170여 발의 포를, 한국군은 80여 발의 대포병 사격을 실시했다.[* [[http://media.daum.net/politics/north/view.html?cateid=1068&newsid=20101126023514776&p=hankooki|자주포 절반만 작동... 포탄장전도 4발씩만... "안 쏜 게 아니라 못 쐈다"]], 한국일보, 2010.11.26]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의 발표에 따르면 오후 3시 41분 일단 포격은 종료되었다. [[조선인민군|북한군]]의 포탄 중 '''절반 정도는 바다에 떨어졌고 나머지가 [[연평도]]에 떨어졌다.''' [[130mm]]과 75mm 포와 방사포탄을 사용했으며[*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북한군 포병 전력의 무서운 점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불확정성 원리|어디로 떨어질지 모른다!]] 물론 [[방사포]]의 정확도는 현저하게 낮긴 하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다.] 또한 포격에 사용된 [[122mm]] 방사포바로켓 불발탄들이 [[연평도]]에서 발견되었다. 군 당국은 앞의 두 개로 영점 조준을 하고 [[방사포]]를 메인으로 때려버린 거 같다고 한다. 문제는 오차도 매우 크고 지상에 떨어진 것 중에서도 불발탄이 20여 발이나 되어 군이 수거하였다. 그러니까 지상에 낙하한 것만 불발탄 비율이 약 30%가 넘어갔다. 지상에 유효타를 본 것도 30% 정도. 그것도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을 노리는 4군단에서 미리 준비해놓고도 이렇다는 것이다. 즉, '''북한군의 탄약 관리와 제대로 된 포탄 생산/보급이 극히 부실'''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연평도]] 지상에 떨어진 것들 중에 불발탄이 아니라 제대로 폭발한 포탄들도 적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아군 포대쪽이나 군 시설에 정확히 떨어진 건 별로 없고 대부분이 엉뚱한 민간인 지역 여기저기에 마구잡이식으로 산만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민간 건물 등 민간시설 피해가 많았다. 주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대피소에 빨리 대피했기 때문에 인명 피해는 다행히 많지 않았지만.][* 실제 전시라고 생각을 해 보자. 군사시설에 타격을 주지 않으면 본인들이 바로 반격받을 게 뻔한데 왜 굳이 민간인에게 타격을 하겠는가? 언제든 반격받겠지만 1차적으로 해당 지역의 군사를 빠르게 무력화 시켜야 했는데, 민간지역에만 포탄이 떨어졌다는 것은 얼마나 사격이 형편없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즉 '''북한군의 포 사격 수준이 매우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에 나온 북한군 출신 탈북자들도 21세기 들어서 북한은 핵개발에만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고 그 외 지상군의 사격 훈련은 실사격 훈련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을 정도로 매우 부실한 수준이라고 일관되게 증언하고 있다. 한편 [[포격]]이 일어나고 있을 때 한국군이 14시 38분 급히 [[F-16#s-5.1|KF-16]],[[F-15K]]와 해군 함정들을 보내자 북한은 [[MiG-23]] 3대를 출격시키고 경비정도 출동시켜 공중과 해상에서도 무력충돌 직전까지 갔다. 이를 볼 때 북한은 확전이 될 것도 각오하고 이 도발을 저지른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포병사격 최초대응사격이 13분 이상 걸려, 평소 군 당국이 공언하던 5분 이내 대응사격에 비해 지연된 것이 아니냐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7&aid=0000011235|논란이 있었으나]] [[K-9 자주곡사포]] 6문 전체가 사격훈련 중 사태가 발생하여 지연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대응사격 역시 상당히 늦게 이뤄졌으나 정밀한 타격을 위해 사격원점을 찾는 데 시간이 소요되었다고 군은 해명하였다.[* 사실 말이 쉽지, 장거리도 아니고 그런 지근거리에서 포를 발사했는데 이를 사전에 포착하기는 힘들다. 게다가 피격 원인 파악을 서두르다 오판해서 엉뚱한 방향으로 대응하면 얄짤없이 2차 한국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초기 추정치였던 50~200발의 포탄에 대응해 일반적인 3배 대응 원칙으로 반격했으면 150~600발을 발포했어야 하는데 80발 정도만 대응사격한 것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다. 급작스럽게 선제공격을 당한 사건임을 감안할 필요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사격한 [[K-9 자주곡사포]] 포대는 오전에 이미 포격훈련을 한지라 탄약이 없었고[* 자주포 내부에 적재된 탄이 없어서 포병들이 탄약고에서 일일이 포탄과 장약을 꺼내와 포까지 옮겨야 했다.] 2대는 초기 포격으로 파손당해 전력 외였다. 1대는 오전 훈련 도중 불발탄이 걸려서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포격을 실시간으로 맞는 중에 몇 발이나 떨어졌는지 일일이 셀 수도 없는 일이고. 그리고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가 설사 포탄이 200발 이상이 떨어진 것을 정확하게 알았어도 600발을 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평도]]는 섬이다 보니 언제 포탄이 다시 보급될지 알 수가 없다. 사용된 포탄은 어떻게든 보급을 다시 해 놓으면 된다지만 더 중요한 건 포병 입장에선 이것이 [[국지도발|국지적이고 일시적인 도발]]인지 아니면 [[6.25 전쟁]]의 재발인지 알 도리가 없다. 즉 현장에 있던 해병대로선 다음날에도 포격전을 해야 할지 아니면 오늘만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전이 결정난 상태라거나 아니면 지휘부가 따로 명령을 내리지 않는 한 포탄을 대량 소모하겠다는 판단을 하기 힘들다. 이 때문에 3배 대응 원칙이 사실상 실현 불가능한 원칙이라는 비판이 있다. 연평도에 주어지는 보급의 한계를 감안했을 때 어느 정도는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은 연평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 군에 적용되는 것이며 보급에 걱정이 없는 본토의 경우는 지키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연평도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지키기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보급조건이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육지에 있는 포대를 상대하는 불리함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